한편에서는 올여름 파리 올림픽을 올림픽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인 게임이라고 평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속 없는 그린워싱이라고 비난한다. 화제성이 높은 만큼 구설도 많았다. 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선수촌 객실에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질 에어컨 대신에 지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를 설치한 데 대해 각국 선수단 관계자들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때마침 올림픽 기간 파리의 폭염 리스크를 경고한 보고서가 발간되어 이러한 우려는 증폭되었다. 올림픽 조직위는 히트펌프로 선수촌 객실 내 실내 온도를 바깥보다 6도 가까이 낮게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각국 대표단들의 불안을 불식시키지 못했고 끝내 대표단들의 에어컨 설치를 허용했다. 자체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한 국가는 주로 미국, 호주 등 선진국이었는데, 이는 올림픽이 빈부 간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또 다른 비난을 낳았다. 결국 올림픽 조직위는 히트펌프를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기후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비난까지 감당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또 다른 논란거리도 있었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가 마라톤 수영과 트라이애슬론 수영경기를 센강에서 치르기로 하자 일부 시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조직위가 센강을 경기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수질오염이 심한 센강을 정화해서 옛날처럼 시민들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재탄생시키고, 올림픽을 위해 새로운 인프라를 추가적으로 건설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2조 억 원의 세금을 센강 수질정화에 쏟아붓는 데 호의적이지 않았다. 급기야 SNS상에서 센강에 대변을 보자는 보이콧 운동까지 벌어졌고, 마크롱 대통령과 이달고 파리시장은 센강의 위생을 검증해보이기 위해 몸소 센강에서 수영을 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논란들은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인 올림픽을 치르려던 파리 올림픽 조직위의 당찬 포부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선수단과 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올림픽의 탄소중립은 올림픽 조직위 혼자서는 이루지 못한다는 쓰고 떨떠름한 교훈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일도 없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도 ‘최고’, ‘최초’가 되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타협가능한 목표를 세웠다면 이런 논란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사안일주의야 말로 심층적인 저탄소 전환을 가로막는 독이다. 파리에서 녹색 성화를 밝히려던 올림픽 조직위의 노력은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규모의 국제행사를 치르는 데 있어 탄소중립을 위해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옵션들의 적용가능성과 한계치를 실험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앞으로 치러질 올림픽 게임들의 탄소중립 목표를 높여놨고, 당장 바로 다음 게임을 준비해야 하는 올림픽 조직위에게는 큰 도전과제를 안겨준 셈이다. 도전을 통해 우리는 한층 진화된 방법을 찾아간다. 탄소다배출 올림픽도 당장 그만두기보다 계속하는 것이 나은 이유다.
그린 소싱의 원칙
파리 올림픽 조직위는 이번 올림픽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조달 전략도 국제표준화기구의 지속가능한 조달지침인 ‘ISO 20400’에 따라 수립되었다. 파리 올림픽의 조달 전략은 5가지로 구성된다. 첫째는 순환경제, 둘째는 탄소발자국 감축 및 환경보전, 셋째는 사회혁신, 넷째는 장애인 포용, 다섯째는 지역사회 가치창출이다.
데이터센터 폐열로 데우는 올림픽 수영경기장
센생드니(Seine-Saint-Denis)에 들어선 수영경기장 ‘올림픽수상센터(Olympic Aquatic Centre)’는 이번 올림픽의 유일한 신축 경기장이다. 하필 센생드니에 수영장을 만든 이유는 이 지역이 인구 1.6백만 명에 수영장은 38개밖에 안 되는 파리 근교에서 수영장 인프라가 가장 부족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수영경기장은 여러 가지로 특이하다. 우선, 목재로 프레임과 구조를 만들었다. 천장은 오목하게 만들어 평평한 천장 대비 실내공간을 30% 가까이 줄여 건물 에너지 수요를 줄였다. 또한 옥상에는 5,000 m2 규모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건물 에너지 수요의 20%를 자급한다. 사용한 물의 50%를 재활용할 수 있는 회수시스템을 구비했고, 수영장 주위에 1백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수영장 물을 인근 데이터센터에서 공급받은 폐열을 이용해서 데운다는 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수영연맹(FINA)의 기준에 따라, 올림픽 수영경기장의 수온은 25~28°C 사이로 유지되어야 한다. 250만 리터에 이르는 수영경기장의 물을 데우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때마침 2023년 생드니에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전문기업인 에퀴닉스(Equinix)의 10번째 프랑스 데이터센터 ‘PA10’이 문을 열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및 IT 장비를 냉각하는 과정에서 많은 열을 방출하는데, 이 폐열을 회수하면 주변 건물이나 시설에 난방을 제공할 수 있다. 올림픽수상센터 건립을 총괄한 공공조직인 SOLIDEO도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SOLIDEO는 PA10의 폐열을 공급받기로 하고 에퀴닉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그것도 2024년 7월부터 15년간 무료로 말이다. 전 세계에서 220개가 넘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에퀴닉스는 이미 수년 전부터 핀란드, 독일, 스위스, 캐나다 등에서 열공급프로그램(Heat Export programm)을 통해 지역사회에 폐열을 공급해왔다.
환경보호를 위한 타히티의 수상 선수촌
남태평양에 위치한 화산섬 타히티 바이라오 만(Vairao Bay)에는 크루즈선 한 대가 올림픽 기간 내내 정박해있다. 폴리네이사선박회사(CPTM)가 운영하는 민간 크루즈선이지만 올림픽 기간에는 공식적인 올림픽 선수촌이다. 해당 크루즈선은 ‘아라누이 5(Aranui 5)’로, 평소 타히티와 마르케사스를 운항하며 103개 객실에 254명까지 수용한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사랑했던 타히티는 마요트, 뉴칼레도니아, 마르티니크 등과 함께 프랑스령 해외영토다. 타히티는 천상의 자연경관과 해변, 아름다운 산호초로 유명하며, 특히 테아후푸(Teahupo’o)는 전 세계 서퍼들 사이에서 서핑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올해 파리 올림픽의 서핑 경기는 이곳에서 벌어진다.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치르려면 도로, 숙박시설 등 여러 가지 인프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올림픽 조직위는 타히티에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대신에, 선수촌으로 민간 크루즈선을 사용하고 지역 주민들의 집을 관계자와 관중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제안했다. 파리 올림픽이 탄소 및 물질 발자국(material footprint)을 줄이기 위해 채택한 ‘기존 시설물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을 글자 그대로 이행한 셈이다.
사실 올림픽 조직위가 처음부터 크루즈선을 선수촌으로 활용하고, 주민들의 집을 숙박시설로 제안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올림픽과 같은 대형 행사가 지역색 짙은 작은 마을 테아후푸의 자연과 문화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고, 무엇보다도 테아후푸에는 숙박시설로 사용할 만한 호텔이 없었다. 남은 옵션은 지역 주민들의 집을 이용하는 방법뿐이었고, 선수촌은 경기장에서 가까워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지역 크루즈선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타히티의 수상 선수촌은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내려진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상깊은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그린 아웃소싱 사례로 남았다.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위한 도전
비영리단체 카본마켓워치(Carbon Market Watch)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파리 올림픽의 지속가능계획은 전체 올림픽 온실가스 배출량의 30% 정도만 취급하며, 특히 관계자 및 관중의 장거리 이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파리 올림픽 조직위는 보고서가 조직위의 전체적인 탄소저감 조치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누구 말이 옳은지는 이제 곧 올림픽 게임이 종료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국제적 스포츠 행사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카본마켓워치는 올림픽의 탄소감축 목표달성을 위해 관중 수를 제한하고, 올림픽 경기를 한 국가에서 모두 치르지 말고 여러 국가로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단체인 Earthday.org는 매번 개최국을 바꿔 새로운 시설을 짓지 말고, 몇 곳의 올림픽 도시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돌아가면서 경기를 치를 것을 제안한다. 국제교류를 증진하고 세계 평화를 도모한다는 올림픽 본연의 취지와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고려해 봄직한 아이디어들이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성공시키려면 채찍이 필요하기도 하고, 야심차게 추진하다 보면 논란도 생기게 마련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의 가장 큰 논란거리는 골판지 침대였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 도입한 골판지 침대는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소재라는 장점이 무색하게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도 골판지 침대가 사용됐지만 이번에는 그닥 이슈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골판지 침대가 친환경 올림픽을 위한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올림픽의 그린 소싱 기준은 그렇게 한 단계 높아졌다. 우리가 올림픽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 이 글은 한국석유공사의 웹진 ‘석유사랑’ 기고글입니다.
https://www.knoc.co.kr/upload/EBOOK/sabo/202/sub/sub2_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