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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형 스마트 시티의 아이콘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핀란드형 스마트 시티의 아이콘
휘바, 스마트 칼라사타마!

핀란드는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많은 사람은 그저 산타클로스가 사는 눈 덮인 추운 나라를 떠올릴 것이다. 벽난로에서는 장작불이 이글대고 순록이 썰매를 끄는 그런 곳 말이다. 그러나 핀란드는 그런 아날로그가 아니다. 그 어느 곳보다 디지털 혁신을 좇고 있는 스마트 기술 강국이다. 특히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203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스마트 저탄소 기술을 활용한 탄소감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0 스마트 시티 인텍스’에서는 전 세계 118개 도시 중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헬싱키의 이러한 노력의 정점에는 핀란드형 스마트 시티의 아이콘인 칼라사타마(Kalasatama) 지구가 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산타마을 만큼이나 대표적인 ‘메이드 인 핀란드’ 상품이 노키아 폰이었다. 한때 시장 점유율 1위로 글로벌 휴대전화기 시장을 주름잡았으나,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탓에 내리막을 걷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되었다. 핀란드의 노키아 신화는 막을 내렸지만 낙담은 일렀다. 비록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지만, 노키아를 일궈낸 우수한 직원들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인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양한 분야에서 스타트업을 설립했고, 국가는 기술혁신기금청(Finnish Funding Agency for Technology and Innovation, TEKES)을 통해 벤처 생태계 조성을 지원했다. 핀란드는 바야흐로 북유럽 혁신 허브로 성장했다. 한 언론은 이를 두고 ‘노키아의 선물’이라 평했다. ‘

스마트 칼라사타마’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2013년, 핀란드의 국가 대표기업 노키아가 미국 기업에 헐값에 팔려나간 그해, 스마트 칼라사타마 계획은 본격 궤도에 올랐다.

버려진 항만에서 스마트 혁신지구로

칼라사타마는 헬싱키 도심에서 북쪽으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한국식 행정구역에 빗대어 보자면, 헬싱키시 쇠르내이낸(Sörnäinen)동에 있는 칼라사타마 지구다. 면적은 0.70㎢로 여의도 면적(2.9㎢)의 1/4 정도이며, 4천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지역이다. 물론 이는 현재의 모습이고, 역동적으로 변신 중인 칼라사타마의 미래 모습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계획에 따르면, 2040년 무렵이면 간척사업을 통해 대지면적은 2.5배 넓어지고 혁신기업에서 1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 인구는 3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별 볼 일 없는 화물 항만에 불과했던 칼라사타마는 2008년 항구가 폐쇄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헬싱키 시정부는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지역으로 헬싱키 도심에서 가까운 칼라사타마에 주목했다. 그리고 시의 에너지기업인 헬렌(Helen Ltd)과 함께 칼라사타마를 핀란드에서 가장 큰 스마트 에너지 솔루션 시범 지구로 변모시키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고, 2013년 헬싱키 시의회는 이를 공식 승인했다. 헬싱키시는 칼라사타마를 일상에서 기능하는 스마트 시티로 만들고자 했다. 이에 2014년 시정부 산하 혁신기업으로 설립된 ‘포럼 비리움 헬싱키’는 주민·기업·연구자 등 지역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리빙랩 혹은 혁신 플랫폼으로서 ‘스마트 칼라사타마’ 프로젝트에 본격 착수했다.

지속가능하고 스마트한 에너지 생산과 소비

지속가능한 청정 에너지는 지역주민의 웰빙에 매우 중요하다. 칼라사타마 전경을 바라보면 바다를 끼고 있는 붉은 벽돌색의 큰 건물이 눈에 띈다. 하나사리(Hanasaari) 발전소다. 하나사리 발전소는 70년대 석탄발전소로 설립되었으나 2010년대 후반 바이오매스 발전소로 전환되었다. 지금도 하나사리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80%는 버려진 목재를 가공한 우드펠릿에서 나온다. 그러나 바이오매스의 친환경성 논란 때문일까? 이 마저도 2023년 4월 1일부로 폐쇄될 예정이다.

칼라사타마는 청정 에너지원을 활용하여 지역에서 직접 전력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2015년 봄, 하나사리 발전소 옆에는 수빌라티(Suvilahti)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섰다. 이곳에는 285W 용량의 태양광 패널 1,194개가 설치돼있다. 발전소 운영은 시 산하 에너지기업 헬렌이 맡고 있지만, 1,194개 패널의 주인은 모두 다르다. 헬싱키 시민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패널을 지정해 월 4.40€만 내면 대여할 수 있다. 헬렌은 헬싱키 전역에서 클라우드 펀딩을 통한 대여형 발전소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수빌라티 태양광 발전소를 포함해 모두 6천 8백여 개에 이르는 태양광 패널은 현재 모두 계약이 완료된 상태다. 수빌라티 태양광 발전소 지근거리에 있는 카트리 발라 공원 지하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트리 발라 냉난방 플랜트(Katri Vala Heating and Cooling Plant)가 있다. 폐수열과 데이터센터 등 건물에서 나오는 폐열을 활용해 지역에 냉난방을 공급한다. 2017년에는 57만MWh의 열에너지를 생산하여 헬싱키시가 필요로 하는 열의 8%를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2021년에는 기존의 히트펌프 5대에 1대를 추가 설치하여 2017년 대비 생산량을 30% 늘렸다. 카트리 발라 냉난방 시스템은 폐수열과 폐열을 활용함으로써 중유를 사용하는 개별난방과 비교하면 탄소배출량을 80% 감축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칼라사타마는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원할 때 언제든 꺼내쓸 수 있도록 지역난방의 열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도 구축해두고 있다. 무스티카마(Mustikkamaa) 섬 지하 80m 아래에는 26만㎥ 규모의 거대한 동굴형 열저장 시설이 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핀란드 고유의, 그리고 핀란드 최대 규모의 동굴형 열저장 시설이다. 이 암석 동굴은 8~90년대 중유 보관소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헬렌이 2019년 열저장 시설 구축에 착수하여 2021년 완공했다. 에너지는 45℃~100℃의 온수로 저장하며, 저장가능한 에너지 용량은 11.6GWh이다. 2020년 12월 무렵 공사가 끝나고 3억 2천만 리터의 물을 채우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무스티카마의 동굴 열저장소 덕분에 헬싱키는 연간 2만 1천 톤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에너지 생산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도 중요하다. 칼라사타마의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은 풍력 발전기로 생산한 전기를 지역의 전기차 충전소로 연결하고, 지능화된 에너지 시스템을 통해 탄소중립 건물을 실현한다. 실례로 칼라사타마의 주택은 스마트 인터페이스가 설치되어 있어 집집마다 가전별 실시간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하고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데이터를 내가 소비한 먹거리 데이터와 통합하여 나의 하루 탄소배출량이 얼마인지, 내가 일상에서 어떻게 기후친화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사람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 스마트 리빙

스마트 칼라사타마의 비전은 ‘하루 한 시간 더(one more hour a day)’이다. 스마트 솔루션을 통해 에너지와 교통, 물류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하루 한 시간의 여유를 더 가져보자는 취지다. 칼라사타마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스마트 시티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하루 한 시간의 여유를 더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통 시스템이 중요하다. 칼라사타마에는 도심과 바로 연결되는 지하철역도 있지만, 헬싱키 시내 주요 장소와 기차역을 연결하는 트램이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건설 중에 있다. 지하철, 버스, 트램을 내 집까지 촘촘하게 연결하는 교통 수단도 스마트 시티에 필수적이다. 혁신적인 리빙랩을 자처하는 칼라사타마는 다양한 미래형 교통 수단을 실험했는데, 핀란드 최초의 도심형 자율주행 미니 전기버스인 로보버스(Robobus)도 그중 하나다. 실험을 주도한 연구진은 칼라사타마에서의 시범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행경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자율주행 ‘콜버스’를 헬싱키 시내 다른 지역에서 실험하고 있다.

칼라사타마 주민들이 꼽은 최고의 스마트 솔루션은 폐기물 수거 시스템 ‘IMU’다. 칼라사타마에서는 특별 제작된 쓰레기 수거함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수거함은 음식물류, 종이류, 박스류, 플라스틱류, 일반쓰레기의 5종이 있는데, 모든 수거함은 지하 파이프 라인을 통해 폐기물 집결지로 바로 연결된다. 마치 지하 상·하수도 관처럼 말이다. 쓰레기 수거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악취 나는 트럭도 필요 없다. 버리는 동시에 지하에서 바로 처리되니 빠르고 효율적이다.

앞으로는 핀란드 전역에서 스마트 칼라사타마를 만나게 될 것 같다. 헬싱키를 포함한 주요 도시 6곳이 ‘6개 도시 전략(Six City Strategy)’을 맺어 스마트 시티로 변신 중이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실패를 딛고 일어난 핀란드는 한층 패기 넘치는 모습이다. 핀란드의 십 년 후가 기대되는 이유다.

▶ 이 글은 한국전력공사의 격월지 ‘빛으로 여는 세상’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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