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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시대의 슬기로운 예술 생활 : 미술전시편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모나리자의 수난 시대다. 생크림 케이크에 얻어맞고, 호박 수프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뭐가 더 중요한가요? 예술인가요 아니면 지속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인간의 권리인가요?” 음식 테러를 강행한 환경운동가들은 한가하게 그림 구경이나 하지 말고 아픈 지구를 생각하라고 소리쳤다.

호박 수프를 뒤집어쓴 모나리자 (사진: BBC)

최근 미술관 테러가 드물지 않게 벌어졌다. 반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도 토마토 수프 테러를 피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하필 미술관이고, 왜 하고많은 그림 중에 모나리자와 해바라기였을까? 대부분은 환경운동가들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인지도가 높은 명화를 골라 시위 퍼포먼스를 벌인 것으로 생각한다. 모나리자는 매년 천만 명의 관람객이 보러오는 명화 중의 명화가 아닌가. 위대한 작품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볼품없는 수프의 파괴적 연출은 너무나도 센세이셔널해서 세계 각국의 미디어를 타고 보도되었다.

물론 모나리자와 해바라기는 잘못이 없다. 최근의 시위 퍼포먼스도 미술계에 호통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미술계도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미 업계에서는 작품을 만들고, 운송하고, 전시하는 모든 방식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이니셔티브를 구상하여 실행하고 있다.

사람도 작품도 “자꾸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미술계는 일년내내 바쁘다. 프리즈, 아트 바젤, 피악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 수준에서도 다양한 아트페어가 매년 전 세계 곳곳에서 개최된다. 베니스, 뉴욕, 상파울루 등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도 있다.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 내셔널 갤러리 등 세계 각국의 미술관들은 상설전시도 하지만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도 한다, 작은 갤러리들도 마찬가지다. 예술가, 전시 및 페어 관계자, 수집가, 관람객 등 수많은 사람이 이곳들을 방문하기 위해 이동한다. 미술품도 이곳저곳으로 보내기 위해 비행기를 태운다. 사람도 작품도 모두 비행기를 많이 탄다.

(사진: Art Market Productions)

미술전시 분야에서 가장 많은 탄소는 이동과 운송에서 발생한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특히 미술전시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글로벌화 되어 있다. 사람과 작품의 국가 간 이동이 많은 이유다. 이동 거리가 멀고 섬처럼 접근성이 제한된 곳이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동수단은 비행기다. 더구나 시간이 황금인 시대에 부유하고 바쁜 미술애호가에게 그 외 다른 이동수단은 고려대상도 아닐 것이다. 도쿄에 가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스웨덴의 한 예술가처럼 도전적인 실험정신을 발휘해볼 수도 있겠지만, 예술가 정신 없이는 따라 하기 힘든 방법이다. 기차에서만 2주를 보낸 이 ‘희귀한’ 예술가는 기차를 “이동용 작업실”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거꾸로 말하면 비행기를 버리고 철도나 배, 버스 등 저탄소 이동수단을 이용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는 말이다. ​

샌프란시스코의 호스펠트(Hosfelt) 갤러리는 수집가들과 직원들의 이동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혁신을 시도했다. 먼저 해외에 거주하는 큐레이터와 수집가들을 위해서 가상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해외 출장을 줄였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그렇게 자주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똑같은 업무를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어떻게’ 출장을 갈 것인지 조금 더 전략적이고 스마트하게 계획하면 세 번 갈 출장을 한 번으로 충분히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갤러리 관장의 말대로, 비행기 이용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도 그 효과는 상당하다.

호스펠트 갤러리 전경 (사진: Miles Petersen)

그리고 직원들의 통근 방식을 바꾸기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30일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직원에게 하루의 유급휴가를 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인센티브 제도는 성공적이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던 직원의 절반 이상이 일주일에 최소 3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다. ​

작품 운송도 미술계의 온실가스 배출 주범이다. 미술작품은 습도와 온도 변화에 취약하고 운반상 취급이 까다로워 항공운송이 불문율이다. 그러나 항공운송은 탄소를 육상운송의 10배, 해상운송의 60배 이상 배출한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인 크리스티(Christie’s)는 최근 한 미술품 운송 전문업체와 런던-뉴욕, 런던-홍콩 루트에 대한 해상운송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 업체는 고가의 미술품 운송을 위해 온습도 조절기와 충격 모니터링 시스템, 냉장 시스템을 탑재한 특별한 컨테이너를 개발했다. 비록 런던-뉴욕 운송에 20일, 런던-홍콩 구간에 40일이 걸리지만, 항공운송 대비 80%의 온실가스를 절감했다.

물류 업체 Crozier의 특수 컨테이너 내부 (사진: Crozier 웹사이트)

베를린의 갤러리 하버캄프 레이텐슈나이더(Haverkampf Leistenschneider)는 다른 갤러리들과 네트워크 협력을 통해 탄소 감축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하버캄프 레이텐슈나이더는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하기 위해 베를린에 있는 다른 갤러리들과 손을 잡았다. 직원들은 카풀을 하고, 미술품들은 모아서 차 한 대에 실어 보냈다. 사람과 작품을 한데 모으니 비용과 탄소가 모두 줄었다. 하버캄프 레이텐슈나이더는 2028년까지 모든 국제운송은 해상이나 육상으로만 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 ​

전시장 내 온실가스 감축은 아이디어 싸움 ​

사람들이 방문하는 공간의 특성상 상시 안락한 실내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전시장은 소비하는 에너지도 엄청나다. 에너지 분야에서 탄소를 줄이는 방법은 2가지다. 친환경에너지로 바꾸거나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소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2019년 런던 프리즈는 기존의 화석연료 대신 폐기름으로 만든 재생연료를 사용하여 온실가스를 90% 가까이 감축했다. 영국 버밍햄의 미드랜드 아트센터(Midlands Arts Centre)는 에너지원의 전환과 에너지 효율화의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했다.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구축하여 재생에너지로 필요한 전력을 조달하는 동시에, 고효율 보일러 설치, LED 전구 교체, 빌딩 에너지 관리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2021년에는 에너지 관련 탄소배출량을 2019년 대비 22% 줄일 수 있었다.

미드랜드 아트센터 옥상 태양광 발전 시설 (사진: Midlands Arts Center 유튜브)

전시장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은 찾아보면 더 많다. 런던 프리즈는 전시장의 천막과 부스, 카페트를 한번 사용했던 것을 재사용하고, 파리 피악은 파리포토페어에서 사용했던 칸막이 벽 구조물을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폐기물을 줄이고 자원순환에 참여했다. 전시 리플렛을 재생용지를 사용해서 콩기름 흑백인쇄로 제작할 수도 있고, 오디오 가이드도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고 폐기 시 분해 및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사용하면 좋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시장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뽀족한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면, 연매출액의 1~2%를 적립해 자체 기후기금을 조성하여 예술계의 탄소중립을 위한 프로젝트나 캠페인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결국 전시장 내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전체 공급망 내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고 함께 노력해야만 탄소중립에 다가설 수 있다. ​ ​

세상에 한가한 예술은 없다 ​

호박 수프를 뒤집어쓴 모나리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수프를 던진 환경운동가들은 모나리자를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것임이 분명하다. 미술애호가라면 모나리자에게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나리자 수프 테러의 본질은 환경에 대한 경고에 앞서, 미술에 대한 환경운동가의 무관심에 있는지도 모른다. ​

‘수프 난사’를 자행한 사샤와 마리-줄리에트는 예술을 사랑하는 ‘한가한’ 사람들을 비난했지만, 예술은 한가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늘 예술과 함께였다. 인간을 지탱하는 힘은 의식주가 아니라 희망, 용서, 믿음 등 그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여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호모 루덴스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글은 한국석유공사의 웹진 ‘석유사랑’ 기고글입니다.
https://www.knoc.co.kr/upload/EBOOK/sabo/200/sub/sub2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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