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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시대의 슬기로운 예술 생활 : 무대공연편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출처 : KBS 뉴스 화면캡쳐)

가수 싸이의 흠뻑쇼는 더운 여름 공연장을 흠뻑 적시는 독특한 콘셉트로 큰 인기다. 하지만 매회 3백 톤의 물이 버려진다는 사실에 비난이 일기도 했다. 그렇다면 물 낭비를 자제하면 친환경 공연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쏟아지는 물은 쉽게 눈에 띌 뿐. 각종 무대장치와 조명기기 작동에 필요한 전력 소비, 그리고 무대 세트와 기구 운반을 위한 물류에서도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은 탄소는 관객들이 이동할 때 발생한다. 2023년 BTS 데뷔 10주년 콘서트를 보기 위해 수만 명의 해외 팬들이 서울을 찾았다. 이들은 필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을 것이다. 아티스트의 인기가 높으면 먼 곳에서도 팬들이 찾아오는 법이다. 관객들의 이동이 탄소를 배출해서 문제가 된다면 인기가 많은 아티스트는 기후악당이란 말인가? ​

공연예술은 아티스트와 관객이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내는 맛이다. 아티스트가 3백 톤의 물을 쓰는 것도, 수만 명의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는 놀면서 배출하는 탄소에 야박하다. 하지만 유희는 호모 루덴스가 살아가는 이유다. 기후위기에도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사실 공연예술업계야말로 기후변화의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폭우와 폭염이 발생하면 공연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공연예술업계도 녹색공연을 위해 온갖 형태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 ​

저와 같이 가실래요? ​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넘어서 완전한 재생을 목표로 합니다”

온갖 장르의 음악이 자유롭게 조우하는 샴발라(Shambala) 페스티벌은 2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라이브 뮤직 이벤트다. 유럽 전역에서 하루 2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샴발라를 찾는다. 그런데 2025년부터는 자가용으로 혼자 온 사람은 페스티벌 사이트에 입장할 수 없게 된다. 최소 3명 이상은 태워야만 진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라고 자유롭지는 않다.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SAF(지속가능한 항공 연료)를 사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샴발라 페스티벌은 자타공인 지속가능한 공연 분야의 개척자로서 ‘그린 로드맵 2025’를 수립했다. 주최측은 관객들의 이동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페스티벌 전체 탄소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고, 2025년까지 관객들의 절반 가량은 셔틀버스, 기차, 전기차 등 저탄소 교통수단을 사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출처: Stuart Trevor)

샴발라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기차를 타고 와서 바이오연료로 달리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좋고, 카풀도 좋다. 샴발라는 2023년에 ‘지속가능한 이동 패키지’를 도입하여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는 관객들에게는 30파운드 할인된 가격에 입장권을 판매했다. 또한 샴발라로 오는 관객들이 쉽게 카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리프트쉐어 페스티벌’이라는 카풀 플랫폼을 제공했다. 샴발라 익스프레스 버스도 있다. 영국 내 주요 도시 6곳과 샴발라 공연장을 바로 잇는 특별 노선을 운행하는데 무려 76대의 버스가 마련돼있다.

샴발라가 관객들을 모아서 함께 이동하는 방식으로 탄소감축을 시도했다면, Act Green 프로젝트는 IT 기술과 메시지 서비스를 활용하여 혼자 움직이더라도 가장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도록 도왔다. 이 시범 프로젝트에는 영국의 5개 극장이 참여했으며, 극장 관객들에게 이동수단 및 동선별 탄소배출량 정보와 실시간 최적화 이동방법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관객 이동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40% 이상 줄였다. 구글맵 등 기존의 여러 동선 추천 서비스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메시지 서비스다. 극장들은 최적의 이동방법에 더하여, 관객들이 저탄소 이동수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응원했다. 심리적 지원과 보상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지속가능한 공연의 주연은 바로 관객! ​

당신은 공연장이 좀 추워도 괜찮은가? 공연장 실내온도가 낮으니까 극장에서 객석 간 간격을 좁히고 외투 착용을 권장한다면? 답하려면 고민 꽤나 해야 할 것 같다. 업계 탓만 하기엔 관객의 몫이 크다. ​

공연이벤트 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AGF(A Greener Future)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관객이 공연장에서 소비하는 음료와 간식도 이동 못지않게 중요한 탄소배출원이다. 탄소를 줄이는 방법은 가급적 채식 기반의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로컬푸드, 제철음식을 권장하는 것이다. 특별히 새로운 방법은 아니지만, 공연장 밖에서도 어려운 일이 공연장 안이라고 쉬울 리 없다. 한강 둔치의 야외 페스티벌에서 치킨과 맥주를 포기하기가 어디 쉽나. 공연 주최측이 지역 업체들과 협력해서 제철 채식 기반의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의 협조와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출처: Live Nation 웹사이트)

관객들이 버린 쓰레기도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세계 최대 라이브 공연이벤트 기업인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은 제로웨이스트 콘서트를 목표로 다회용컵 시스템을 도입했다. 라이브 네이션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다회용컵으로 음료를 마신 뒤 수거함에 반납하기만 하면 된다. 다회용컵 1개가 일회용컵 100개를 대체할 수 있고, 3번만 사용해도 환경 편익이 발생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대규모 공연장 PNC Music Pavilion에서 컵 반환율은 90%에 달했고, 일회용컵 13,000 개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 ​

모든 일은 백스테이지에서 벌어진다 ​

여기 단 한 명도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해외순회 공연을 펼친 연극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비행기는커녕 자동차도 탄 사람이 없다. 왜냐면 누구도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난센스 퀴즈를 풀려면 콜롬버스의 달걀이 필요하다. 연극 연출가 케이티 미첼(Katie Mitchell)은 공연장소를 옮길 때마다 현지에서 배우와 스태프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냈다. 그 자신부터도 십여 년째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결심한 연출가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결심한 안무가를 만나 비행 없는 지속가능한 연극을 구상했다. 그렇게 상식에 도전하는 실험극 ‘멸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이 해외순연에 올랐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를 거쳐 대만에서도 공연이 개최되었다. 이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14개 극장과 함께 ‘녹색전환을 위한 지속가능한 극장 연합(STAGES)’을 출범시켰다.

케이티 미첼과 배우들 (출처: barbican.org.uk 웹사이트)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 프로덕션 단계의 탄소중립 노력도 중요하다. 케이티 미첼이 시도한 비행 없는 해외공연이 파격적인 실험이었다면, 실제 지속가능한 공연을 위해 공연 관계자들이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은 발품과 손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매우 일상적이고 지루한 실천의 영역에 있다. 무대 구조물이나 의상, 소품 등은 새로 사지 않고 다른 공연에서 사용했던 것들을 재사용·재활용하고, 조명은 LED를 사용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덜 극적이고 재미도 없지만, 일상의 꾸준한 관심과 실천의 효과는 분명하다. ​ ​

중단된 연극 ​

싸이 흠뻑쇼에서 얼마나 물을 흠뻑 맞아야 관객들이 시원함을 느낄까? 물을 많이 사용할수록 관객들의 만족도가 덩달아 높아지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최적의 물의 양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관객들의 만족감과 콘서트의 사회문화적 효용은 극대화하면서 공연의 지구환경적 임팩트는 최소화하는 지점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정된 재화로서 물의 가치를 제대로 매기는 시장의 노력도 필요하다. ​

근래 환경활동가의 무대 시위로 몇 개의 연극이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죽은 지구에 연극은 없다”고 외쳤다. 내일 기후위기로 공연을 열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오늘 공연을 중단시키는 기막힌 현실을 우리는 맞닥뜨렸다. 하지만 동기가 없으면 행동도 따르지 않는다. 달성할 목적을 잃은 수단은 의미를 상실한다. 즐거움 없는 지구에서 호모 루덴스가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공연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온갖 형태와 방법으로 말이다.

이 글은 한국석유공사의 웹진 ‘석유사랑’ 기고글입니다.
https://www.knoc.co.kr/upload/EBOOK/sabo/201/sub/sub2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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