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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행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해리포터의 플랫폼 9¾
탄소중립행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호그와트행 기차 플랫폼 9¾은 평범한 사람들은 찾지 못한다. 플랫폼 9와 10 사이에서 그저 높은 벽을 마주할 뿐. 하지만 플랫폼이 거기 있다고 믿고 용기를 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딱딱한 벽을 마법처럼 통과해서 열차 플랫폼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여정도 순탄할 리 없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제로투어를 떠날 거라면 녹색철도 플랫폼을 잘 찾아보길. 자동차로도 갈 수 있지만, 해리와 그의 절친 론은 고약한 나무에 처박히는 통에 온갖 고생을 다 했으니 말이다!

기차가 탄소중립에 유리한 이유

기차는 다양한 교통수단 중에 가장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것 중 하나다. 영국의 2018년 데이터를 참고하면, 기차가 배출하는 여객킬로당 온실가스양은 버스의 40%, 휘발유를 사용하는 중형 자동차의 20%, 국내선 비행기의 16%에 불과하다. 세계에너지기구(IEA)의 에너지 집약도 자료에서도 기차가 자동차와 비행기보다 10배 더 효율적인 것으로 나온다.

2017년 여객 교통수단별 에너지 집약도 (출처 : IEA, 2019)

철도는 동력을 이용하는 여객운송의 8%, 화물운송의 7%를 차지하는 반면에, 수송 부문 에너지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만약 자동차, 트럭, 비행기가 철도를 대체한다면, 연간 12억 tCO2e(이산화탄소 환산톤)의 온실가스가 더 배출될 것이다. 특히 고속철도는 탄소집약적인 단거리 비행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어 탄소중립 달성에 더욱 효과적이다. 같은 여정에 대해 고속철도는 항공기 이용을 80% 가까이 줄인다.

철도의 전기화 비율이 다른 교통수단보다 높은 것도 탄소중립에 유리한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객철도의 3/4, 화물철도의 1/2이 전기화했는데, 에너지 믹스에 따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 이러한 변화를 탄소중립 달성의 기회로 활용하기에 철도가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행 여정에서 철도는 비행기, 자동차, 버스, 전기차, 어떤 것과 붙어도 백전백승이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차 동력을 전기에서 얻냐 디젤에서 얻냐에 따라 차이가 있고, 같은 전동차라 하더라도 그 전기를 석탄에서 얻냐 재생에너지에서 얻냐에 따라 또 차이가 난다. 그래서 녹색철도의 가능성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플랫폼 9¾은 철로부터 다르다

탄소중립행 녹색철도가 평범한 철로를 달릴 순 없는 법! 전 세계에 깔린 철로만 백만 킬로미터가 넘는데, 이 철로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면 기차가 가는 곳마다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꿈같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곳이 있으니 독일이다.

독일 도이체반의 철로 태양광

독일 동부 지역의 오레 산맥 인근 철로는 길이 200㎞의 태양광 발전소다. 철로 침목 위에는 침목과 같은 크기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 국영 철도회사 도이치반(Deutsche Bahn)은 회사 차원의 204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영국 에너지 회사 뱅크셋(Bankset)과 함께 철로 태양광 프로젝트를 시험 중이다. 이 철로 태양광 패널은 1km마다 0.1MW의 전력을 생산하며, 현재 규모로도 20MW의 전력을 생산한다. 프로젝트 담당자의 분석대로 향후 독일 전체 철로에서 태양광 설치가 가능한 20,000㎞ 구간으로 확대 설치할 경우, 철로 태양광 발전기의 전력 생산량은 원자력발전소 2기에 맞먹는다.

철로 태양광의 가장 큰 장점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별도의 부지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독일에는 약 60,000km에 이르는 철로가 전역에 설치되어 있다. 독일의 지방 곳곳을 연결하는 지선철도는 하루에 한두 번 밖에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소위 ‘노는 땅’이다. 이 철로를 재생에너지 생산에 활용하는 것은 토지이용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다. 전국 방방곡곡을 잇는 6,000km의 한국 철로를 에너지 생산 기지로 이용할 수 있다면 국토이용 효율 측면에서도 100점이다.

물론 철로 태양광이 완전한 녹색철도를 만들어낼 완벽한 ‘매직’은 아니다. 항간의 지적처럼, 철로 태양광 발전기 때문에 철로 보수가 어려워질 수 있고, 태양광 패널의 빛 반사가 기관사의 시야를 방해할 수도 있으며, 눈이 내리면 발전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적도 프로젝트 담당자의 열정 앞에서는 부질없다. 보수가 쉽고 눈이 쌓이지 않게 설계를 바꾸고, 패널에 비반사 코팅을 해서 빛 반사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란다. 어떤 문제든 극복할 수 있다는 그 용기야말로 어쩌면 탄소중립의 높은 벽을 뛰어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해리포터가 믿고 달려들자 플랫폼 9¾의 벽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기차에 거는 녹색 마법, ‘조용해져라, 깨끗해져라!

마법의 주문이 수백 가지듯, 녹색철도로 거듭나는 방법도 수백 가지다. 차체를 제작할 때 재활용이 가능한 철·알루미늄 등의 소재를 사용하고, 차체 경량화로 열차의 구동 에너지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또는 수천 킬로미터의 철로를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만든 재생 소재로 제작하면 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철도 운영 시스템을 디지털화하는 것도 에너지 소비 효율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열차 주행방식을 ‘에코 드라이브’의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가감속도, 최고속도, 역행·제동 효율, 정차시간 등 많은 요인들이 에너지 소비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철도의 동력원을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 디젤을 태워서 가는 열차라면 전기화해서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고, 전기철도라면 전력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때 철도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철도회사가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는 방법도 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은 철로 외에도 많다. 이미 역사 지붕, 철길 옆, 방음벽, 열차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호주의 바이런 베이 지역에는 세계 최초의 태양광 열차가 운행 중이다. 열차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장착하고 3km 길이의 바이런 베이 리조트 구간을 달린다. 햇빛이 좋은 날에는 태양광 에너지로만 일일 4~5회 주행한다. 미국 자료에 따르면, 300W 용량의 태양광 패널 하나면 한 사람이 기차로 하루에 적게는 8km, 많게는 32km까지 이동할 수 있다.​

바이런 베이 태양광 열차 전경 (출처 : https://byronbaytrain.com.au/sustainability/)

철도회사가 자체적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립해서 전력을 생산할 수도 있다. 철로 태양광을 실험 중인 독일의 ‘도이치반’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에 약 12만 평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해서 42MW의 전력을 생산한다. 영국의 국영 철도회사 ‘네트워크 레일’도 재생에너지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약 50MW의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다. 50MW는 전동차를 구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외한 나머지 비구동(non-traction) 에너지 수요의 15%를 충당할 수 있는 규모다. 영국 철도회사는 2030년까지 비구동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할 계획이다.

일본의 수도권 지역에서 철도를 운영하는 도큐전철(Tokyu Railways)은 자체 태양광 발전소를 설립하지 않고, 대신에 지자체가 발급하는 비화석연료 에너지인증서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한다. 도큐전철의 열차들은 매일 3백만 명이 넘는 승객을 싣고 8개 노선, 100km가 넘는 철로를 달린다. 도큐전철은 철도 운영에 사용한 전력량만큼의 비화석연료 에너지인증서를 구입하여 배출한 탄소를 상쇄한다. 이런 방식으로 도큐전철은 2022년 3월부터 7개 철도노선과 1개 트램노선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 지열, 수열 등의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2019년 RE100 가입을 선언한 일본 최초의 철도회사는 무려 3년 만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 도큐전철에 따르면, 비화석연료 에너지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감축한 탄소량은 일본의 56,000 가구가 일 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량에 맞먹는다.

그러나 수소철도, 그리고 그 너머

전기기차가 녹색철도의 유일한 모델은 아니다. 독일의 브뢰머베르데에는 수소열차 6대가 2022년부터 운행 중이다. 그것도 테스트용이 아니라 정규 여객 열차다. 이 수소열차는 수소로 전기를 생산해서 구동하며, 오로지 물만 배출한다. 수소탱크와 연료전지는 열차 지붕 위에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산업공정 부산물로 생산된 ‘그레이 수소’를 갖다 쓰지만, 4년 뒤에는 풍력과 태양광으로 생산한 ‘그린수소’를 사용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수소열차 기술개발에 성공해 테스트 주행까지 마쳤다.

독일 Bremervörde 지역의 수소철도 (출처 : www.evb-wasserstoffzug.de/en/#press)

철도가 꼭 사람과 화물만 나르라는 법은 없다. 전력망처럼 철도망도 전국 곳곳에 구축되어있는 국가적 인프라다. 전기화된 철도망과 전력망을 연계하여 철도망을 전력망처럼 쓸 수는 없을까? 꿈같은 이야기 같겠지만, 철도-그리드(Railway to Grid)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이미 진행 중이다. 전기철도망과 전력망을 연결해서 재생에너지 기반의 분산에너지 시스템을 위한 유연성 자원으로서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탄소중립행 녹색철도는 칙칙폭폭 소리도 내지 않고, 하얗게 연기도 뿜어 올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차여행의 낭만이 없겠는가? 어딘가로 떠나는 설렘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해리포터 3인방의 풋풋한 첫 만남도 기차 안이 아니었던가. 탄소중립 시대, 기차여행의 낭만은 청정한 하늘과 고요함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 이 글은 한국전력공사의 격월지 ‘빛으로 여는 세상’ 기고글입니다.
https://home.kepco.co.kr/kepco/front/html/WZ/2023_09_10/sub3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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