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매, 스키, 스노우보드는 겨울철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레저활동이다. 선착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슬픈 소식이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눈이 급격히 줄어드는 바람에 앞으로는 눈썰매와 스키를 즐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메마른 겨울철 흙바닥 스키장은 북극의 빙하 못지않게 보기에 애처롭다.
스키장의 눈 실종사건
적설량 감소가 스키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연구에 따르면 앞으로 지구온도가 2도 상승하면 유럽의 2천여 개의 스키 리조트 가운데 절반이 문을 닫고, 4도 상승할 경우에는 거의 모두 문을 닫게 된다. 물론 인공눈으로 돌파구를 마련해보려 할 수도 있겠다. 스위스리프트운영자협회 자일바넨(Seilbahnen)에 따르면, 이미 이탈리아 스키장의 90%, 오스트리아는 70%, 스위스 53%, 프랑스 37%, 독일 25%가 인공눈을 사용한다. 그러나 인공눈도 만성적인 눈 부족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인공눈을 사용해도 스키장의 27%는 여전히 위기이고, 지구온도가 4도 상승할 경우에는 스키장의 1/3도 채 살아남지 못한다.
2011년 동계올림픽을 평창에서 개최하기 위해 김연아 선수까지 나서서 얼마나 뜨거운 유치전을 벌였는지 상기해보자. 우리나라는 3수 끝에 마침내 2018년 동계올림픽을 평창에 유치했다. 그러나 이렇게 열띤 유치전도 이제는 끝인 듯하다. 아니 어쩌면 제발 대회를 치러달라고 부탁을 받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기후변화로 인하여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겨울이 10년에 4.7일씩 줄어들면서 적설량도 덩달아 줄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1980년대 이후로 적설량이 10년에 10~20%씩 줄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동계올림픽을 치른 21곳의 개최지 중 9곳은 2050년 무렵 더이상 대회를 치를 수 없게 된다. 여기에는 러시아 소치, 프랑스 그르노블과 샤모니, 캐나다 밴쿠버, 노르웨이 오슬로 등이 포함된다. 사실 놀랍지도 않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때 경기장 눈의 80%가 인공눈이었으니 말이다. 평창올림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과재배지가 북상하듯이 동계올림픽 장소도 북상 중이다.
독이 든 성배: 제설기와 스폰서십
눈이 오지 않자 많은 스키장들은 인공눈을 만드는 방식으로 폐쇄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인공눈이 자연눈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문제는 없다. 오히려 일부 선수들은 자연눈보다 인공눈을 선호하기도 한다. 인공눈은 촉촉하고 밀도가 있어서 10번의 경기를 소화해낼 정도로 내구성이 좋고, 또 속도를 내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측불허의 자연눈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정갈하게 준비해둔 경기장에 불청객이 남아있지 않도록 강한 바람으로 날려버리기도 한다니 말이다.
선수도 스키장도 인공눈에 불만이 없다면, 지금처럼 계속 제설기를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스키장이 제설기를 동원해서 인공눈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처음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스키업계의 적응 방식으로 이해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과연 제설기가 위기에 빠진 스키업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인공눈을 만드는 데는 많은 에너지와 물이 필요하다. 또한 온도를 낮추거나 눈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학약품도 필요하다. 제설기의 사용은 탄소를 배출하여 기후변화를 더욱 가속할 뿐이다. 제설기는 독이 든 성배다. 당장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듯 보이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스키의 안녕을 바라는 이는 우리만이 아니다. 스키산업의 진흥을 위해 거금을 투척하는 후원자들도 많다.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스키에도 많은 기업후원이 따라붙는다. 안타까운 사실은 스키경기를 가장 많이 후원하는 기업들이 역설적으로 스키업계를 가장 심각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캠페인 그룹의 분석에 따르면, 스키와 관련한 107건의 기업후원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얀 눈 위에서 즐기는 스키의 깨끗하고 친환경적 이미지가 기업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후원이 당장에는 스키업계의 활력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순 있어도 종국에는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의 매출 증진에 기여함으로써 스키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한다.
변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잃는 사람이 있으면 버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중위도 지역의 적설량 감소는 고위도 지역에는 호재다. 북극권을 끼고 있는 스웨덴의 스키 리조트들이 알프스 지역이 누려온 호황을 기대하며 잔뜩 들뜬 이유다. 그러나 알프스 스키장의 큰손인 서유럽 스키어들에게 스웨덴의 스키 리조트가 완벽한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스웨덴은 다른 국가들보다 5년이나 이른 2045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하는 등 강력한 감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스키를 즐기는 데 따른 온실가스는 대부분 사람들이 스키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스웨덴의 온실가스 규제는 비행기, 자동차 등 탄소 다배출 교통수단에 대한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극복해야 할 문화적 차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의 스키 문화는 알프스의 그것과는 꽤나 다르다. 북구의 스키어들은 주로 자연 가까이에서 순수하게 스키를 타는 것에 집중하지만, 알프스를 찾는 스키어들은 밤에 여는 파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스키 시즌이 다른 점도 극복할 과제다. 스웨덴의 최고 스키 시즌은 단연 봄이다. 겨울보다 봄에 낮이 더 길고 눈도 더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럽인은 겨울 휴가철에 맞춰 스키를 즐긴다. 그래서 알프스를 잃은 중위도의 유럽 스키어들이 북유럽에서 스키를 즐기려면 언제, 어떻게 스키를 즐길 것인가를 둘러싼 문화적 차이를 먼저 좁혀야 한다. 결국 스키를 계속 즐기기 위해서는 스키장까지 이동하는 방식과 스키를 향유하는 방식을 스스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키 리조트 역시 변해야 산다. 이탈리아에는 기후변화 때문에 폐쇄했거나 사용하지 않는 스키 리프트가 249개고, 겨울에 한 번이라도 운행을 멈췄거나 일부라도 폐쇄된 리프트가 2백여 개다. 이에 업계는 겨울에는 스키투어링(크로스 컨트리)을, 여름에는 하이킹과 산악바이크를 즐길 수 있는 사계절 리조트로 거듭나는 방식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500명의 동계스포츠 선수들이 국제스키연합(ISF)에 더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신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스키 업계 종사자들은 ‘청정한 아웃도어 선언(The Clean Ourdoor Manifesto)’을 발표하고, 더이상 새로운 리프트와 활강 코스를 만들려고 숲을 베고, 인공눈을 만들기 위해 인공호수와 지하 파이프를 깔지 말 것을 요구했다. 업계의 자성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남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듯이, 스키어들도 스키 터전을 잃었다. 그 너비를 따지면 남태평양 섬나라를 모두 합친 것보다 클 것이다. 생존 터전을 잃은 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스키업계 종사자들은 생계 터전을 잃었고, 우리는 놀이터를 잃었다. 겨울 스포츠를 지속적으로 즐기려면 업계와 스키어들의 필사적인 기후대응 행동이 필요하다. 그깟 스키 좀 안 타면 되지 왜 유난이냐고? 그깟 스키도 즐기지 못할 거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인간은 즐거움을 위해 산다.
이 글은 한국석유공사의 웹진 ‘석유사랑’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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