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우리를 지구 반대편까지 한나절에 데려다주지만, 우리가 치르는 대가도 만만찮다. 비싼 항공료에 더해서 그만큼 많은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배출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내뿜는 온실가스를 우려한 사람들은 비행기 안 타기 운동(no-fly 혹은 flight-free)을 제안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여러 지역에서 높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2023년 스웨덴 공항 이용객수가 20% 급감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한편, 작년 지구 곳곳은 극심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으로 몸살을 앓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자 수많은 사람이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여행의 자유를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자 유명 관광지는 주택가격 상승, 쓰레기 범람, 수자원 부족으로 신음했다. UN여행기구에 따르면 올해 3월 전 세계 해외여행객 수는 작년 동기간 대비 20% 늘어난 2억 8천 5백만여 명에 이르렀다. 해외여행 활황으로 하늘길은 그 어느 때보다 붐볐다.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길에 올라 문제고, 다른 한쪽에서는 비행기 안 타기 운동으로 이용객이 급감하는 바람에 항공업계가 위기에 처한 모양새다.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지속가능한 여행법은 무엇일까?
비행기의 온실가스 배출량
비행기가 오늘날처럼 대중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제트엔진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으로 성장했다. 기후변화를 촉발한 대기 중 온실가스가 1850년 산업혁명기부터 배출되기 시작했다면, 항공 부문의 온실가스는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1940년 무렵부터다. 그렇다 보니 1940년 이래 현재까지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항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문제는 미래다. 항공 부문 온실가스는 연간 배출량 기준으로 전지구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6%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이용률이 가파르게 증가함에 따라 2050년 무렵에는 그 비중이 많게는 22%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비행기는 대표적인 탄소다배출 이동수단이다. 비행기를 타고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 394.5g CO2e이 배출되는데,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자동차가 146.6g CO2e, 버스가 37.5g CO2e, 기차가 5.4g CO2e을 배출한다. 즉, 비행기는 자동차의 2.7배, 기차의 70배를 배출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여행 방법은 무엇일까?
폐기름과 바이오매스로 만드는 지속가능 항공유
역시 문제는 연료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하는 항공연료는 등유에 이것저것 첨가해 가공한 제트유다. 이산화탄소 말고도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그을음 등 다른 온실기체와 오염물질을 함께 배출한다. 온실가스 감축과 대기 중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자동차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 중인데, 비행기도 전기화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아쉽게도 비행기는 전기화가 가장 까다로운 분야 중 하나다. 에너지 밀도, 배터리 무게, 충전 시간 등 기술적 한계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그렇다. 연료를 바꾸는 것이다.
작년 11월 영국의 민간 항공사 버진 아틀랜틱이 런던에서 띄운 뉴욕행 비행기가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100% 지속가능 항공유’로 운행한 세계 최초의 비행이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 항공유(이하 SAF)란 화석연료 대신 재생가능하거나 폐기물을 원료로 생산된 항공 연료로, 전 수명주기 동안 기존의 제트유 대비 탄소배출량을 80% 감축한다. SAF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식물성 기름, 폐식용류, 동물성 지방 폐기물, 농림업 잔여물, 목적 재배 작물 등 바이오매스로 만든 바이오 항공유가 가장 대표적이다. 버진 아틀랜틱의 100% SAF 비행은 폐식용류, 농업 잔류물로도 비행기를 날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줬다.
놀라움은 이내 의아함으로 바뀐다. 100% SAF 비행이 가능한데 왜 더 많은 항공사들이 두 발 벗고 나서지 않을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기술적 측면에서 엔진 성능과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료 표준 규정상 SAF 혼합비율을 최대 50%로 제한하고 있고, 둘째는 생산단가가 기존의 제트연료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비행은 항공업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연료로서 SAF 시대의 막을 여는 일종의 세레모니에 가까웠다. 현재 SAF가 항공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0.2%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2023년 13억 달러 규모에서 2032년 416억 달러로 향후 10년 내 3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SAF 생산량을 2030년까지 30억 갤런, 2050년까지 350억 갤런으로 증산하기로 했고, 우리 정부도 2027년부터 모든 국제선의 항공편에 SAF 1% 혼합급유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SAF 확산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지속가능 항공유는 항공 부문의 중장기적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가장 유력한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다.
기장님, 제일 짧고 높은 길로 가주세요~
자동차도 비행기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연료를 아끼려면 ‘에코 드라이브’가 기본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최적의 경로를 골라서 적정 속도로 달리고, 급제동·급가속을 제한하는 것이 에코 드라이브의 수칙이라면, 비행기를 운전할 때는 짧은 항로를 개발해서 비행고도와 비행속도, 기체중량을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비행고도가 낮을수록 연료도 아끼고 비행거리도 단축해서 온실가스 감축에 유리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비행고도는 높으면 좋다. 고도가 높을수록 대기가 안정적이고 난기류가 적으며 공기 밀도가 낮아 항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연료 효율성이 향상되고 비행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비행고도는 매번 최대 높이로 결정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기장이 고려해야 하는 요인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기종별 엔진과 비행역학, △화물, 승객, 연료를 모두 합한 기체의 중량, △바람과 기온, 기압 등 기상조건, △교통량과 항로 혼잡도, 공역구조(airspace structure)와 관련한 항공교통에 관한 각종 지침과 규제, △연료 효율성, △승객의 편안함과 안전 등 매우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데, 기장은 연료와 시간을 절약하기에 가장 유리한 기류를 타고 비행할 수 있는 고도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달인급의 기장이라도 이 많은 요인을 실시간으로 모두 계산해서 ‘기후 최적화 비행’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AI를 결합한 첨단 고도관리 시스템을 개발해서 실시간 대기 정보 분석을 바탕으로 연료 효율성과 승객의 안전을 가장 잘 조화시킬 수 있는 기후 최적화 비행법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빡빡하게 앉아도 괜찮아!
기장이 에코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승객도 할 일이 있다.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여행 가방을 쌀 때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선택은 대개 편리함을 조금 양보하는 데서 나온다. 여행은 짐을 싸면서부터 이미 시작이다. 여행지에서 혹시라도 필요할까봐, 혹시라도 입게 될까봐, 먹고 싶을까봐 챙겨가는 짐들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봤듯이 기체 중량은 연료 효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다. 불필요한 짐을 싹 덜어내고 가방을 최대한 가볍게 준비하는 것은 저탄소 비행을 위한 워밍업이다.
짐은 적을수록 좋지만 승객은 많이 태울수록 항공기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 한번 비행할 때 최대한 많은 인원을 태우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유리하다. 좌석 간격이 좁더라도 최대한 많이 앉아가는 저가 항공기와 이코노미석의 탄소발자국이 적다. 몇몇 항공권 판매 사이트에서는 항공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정보를 제공하므로 나의 탄소발자국을 확인해보고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다. 티켓은 기왕이면 종이에 출력하기보다 디지털 티켓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간혹 일회용품 제한 정책을 시행 중인 항공사도 있으니 이 부분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항공 부문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거나 말거나 항공 기술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년 전 시장에서 사라진 초음속 여객기가 화려한 부활을 준비 중이다. 미국의 붐 테크놀로지(Boom Technology)사는 소닉붐을 현저하게 줄인 초음속 비행기를 개발하여 이미 민간 항공사들로부터 백여 대를 사전 주문까지 받은 상태다. 초음속 비행기는 말 그대로 ‘기름 먹는 하마’다. 과거 잠깐 운행했던 콩코드(Concorde)는 시간당 약 25,600 리터를 태웠다. 붐 테크놀로지사의 최신 초음속 비행기는 콩코드보다 훨씬 적은 연료를 사용하고 그나마도 100% SAF로 운행된다고 밝혔지만, 일반 여객기에 비하면 여전히 좌석당 연료 소비량은 프리미엄 좌석 기준으로도 2~3배 많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항공 부문의 온실가스가 문제일지라도 삶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침체기에 빠진 수소 비행기도 언젠가는 하늘을 누비게 될 것이다. 어쩌면 초음속 수소 비행기가 여객기 역사의 새로운 막을 열지도 모를 일이다. 진짜 기후악당은 비행기를 타는 여행객이 아니라, 항공 부문의 탄소중립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와 제도,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부정적인 관성이다.
▶ 이 글은 한국석유공사의 웹진 ‘석유사랑’ 기고글입니다.
https://www.knoc.co.kr/upload/EBOOK/sabo/203/sub/sub2_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