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한 글입니다.

(출처: 아르코미술관 제공)
아르코미술관이 지속가능한 미술관으로 변화하게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팬데믹을 겪으면서 미술관이 문을 닫는 시간이 많이 길어지고 불안정한 상황에 대응해야 했습니다. 한국은 국가가 펀딩을 해줘서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지만 해외 미술관들은 상황이 좋지 않아서 문을 닫은 곳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후변화가 미술관에 미치는 민감한 영향에 대해 어떤 대응이 필요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품 생산과 대형 미술관의 탄소배출이 많아져서 이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작가들도 탄소배출이나 지속가능한 재료, 그리고 지속가능한 전시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굉장히 다양한 층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모아졌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에는 삼성미술재단,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미술관 탄소배출에 관한 내용도 함께 공유했습니다. 그 이후, 예술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게 되었고, 탄소중립 모델에 대해서 중소 규모 갤러리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오픈하게 된 것입니다.
아르코가 지속가능한 매뉴얼을 만든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최근에 미술계에서는 과학, 문학과 함께 다학제적이고,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환경 이슈와 생태계야말로 실천가능해야 한다는 모토 아래, 미술관이 학계나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로 확장되었고, 앞으로도 협업 기반의 프로젝트가 중시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한 매뉴얼을 만든 이유는 미술 장르에만 한정된 게 아닙니다.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감각이나 미적인 태도, 그리고 인식의 변화가 일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전시가 관람으로 그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에 아르코 내부의 공감대가 있어서 실천 매뉴얼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아르코의 프로그램이 일상의 실천으로 연결되어 미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변화와 연동되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임팩트가 있어야 아르코가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던 거 같습니다.

(출처: 아르코미술관 제공)
지속가능한 미술관 운영 매뉴얼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곳이 있나요?
팬데믹 때, 세계 미술관협회에서 한 탄소저감에 대한 조사 정보가 매뉴얼 형식으로 나왔고, 이를 아르코미술관에 맞게 참조했어요. CIMAM(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에서 나온 Toolkit(2022년부터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고,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에 대응하는 미술관 실천 툴킷), 비거니즘 전시 매뉴얼(연구창작 콜렉티브), 그리고 예전에 한 워크숍에서 나온 얘기들도 직원들과 함께 참조하면서 작업했습니다. 그 외에도 환경 관련 교수님과 Listen to the city(연구자 모임)를 하거나 전문가 검증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뉴얼을 발표한 이래, 인쇄물이나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등의 실천을 하는 것이 미술관의 기본적인 윤리 태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디자이너가 매뉴얼을 적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듯 합니다. 예술적인 활동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사례가 있거나 해결하신 적이 있었나요?
최근에 다른 미술관에서 했던 전시에서 디자인이 과한 작품에 대해 오히려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현재 아르코미술관은 전시 디자인 장치 자체를 모듈로 만들어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디자인 역량이 좋은 전시를 했다면 지금은 윤리적인 디자인으로 방향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출처: 아르코미술관 제공)

(출처: 아르코미술관 제공)
지속가능한 미술관 운영 매뉴얼의 19가지 지침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제일 가시적인 것은 전시장 내에 가벽을 만들고 전시 조성 공사 등을 줄인 것입니다. 가구를 줄이면서 전시가 휑해 보이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러한 부분을 오히려 사람들이 알아봐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종이 인쇄물을 60% 이상 줄이고 QR 코드를 통해 기존 인쇄물을 다운로드 받아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디지털 약자를 위한 편의도 제공하면서 재활용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 오신 분들도 이제 관점이 바뀌어 미술관이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출처: 아르코미술관 제공)
주제 기획전에서 사용된 물품들을 폐기하지 않고 수거하여 자원이 재순환되도록 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물건나눔을 할 때 재순환에 대한 인식은 어땠나요?
폐기물은 비용을 들여서 버리는 게 아니라 작가가 전시에서 생산된 폐기물을 받아서 직접 분류하고 다른 방식으로 재가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전시에서 나오는 폐자재를 어린이 관련 전시나 다른 전시로 순환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시의 아름다움은 선(善)과 관련이 있고, 전시를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도 윤리성에 민감합니다.

(출처: 아르코미술관 제공)
미술관 전시와 관련하여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난관이나 힘든 점이 있으셨나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전시를 많이 하면 할수록 폐기물이 많이 생산됩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탄소를 발생시키는데, 이를 위해 팬데믹 기간에 전시의 수를 줄였습니다. 하나의 전시를 심도있게 연구해서 오래 전시하도록 했죠. 하지만, 경영(성과적인) 측면과 대중의 기회 측면에서는 가치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시를 많이 해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사람들도 많이 오는 것을 성과지표로 삼는 것이 보통인데, 이에 대한 공감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탄소배출 프로젝트를 할 때, 조사 결과에서 제일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게 사람들의 이동입니다. 하지만 관람객들이 직접 와서 관람하면서 얻는 혜택이나 정서적 기쁨이 있기에 이에 대한 가치를 상대적으로 봐야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매뉴얼을 만들고, 전시의 내용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더 확실한 명분과 감동을 위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연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전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운송에 따른 탄소를 저감하려면 해외 작품의 국내 프로덕션에 한계가 있을 듯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고려하고 계신가요?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운송비가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래서 해외 전시가 힘들고 되도록 작가와의 협의를 통해 현지에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현지에서 제작하여 사람의 이동도 줄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물리적인 이동에 좋은 의미가 부여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줌 회의나 전시 시뮬레이션 기술 발달로 출장을 줄이고 원격으로 작품 배치 회의를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베니스 비엔날래 한국관을 전시할 때 인터넷으로 제어되는 미디어 전시를 하는 등 원격 제어 기술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아르코미술관 지속가능한 미술관 운영 매뉴얼)
예술계의 탄소중립에 있어서 정부나 관람객인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관람객들은 윤리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사실 태도나 관점은 돈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서 한계가 매우 많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절수형 기기로 교체하고 LED 전구로 전면 교체하는 등의 작업을 하였지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르코미술관은 1979년에 지어져서 단열 관련 열효율이 높은 창호로 바꾸기는 했지만, 접근성 측면에서 필요한 엘리베이터 설치가 큰 공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보다 나은 리노베이션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르코미술관의 발빠른 지속가능한 행보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행보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르코미술관이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큐레이터가 중심이 되어서 연구하고 지속가능한 미술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기획, 전시, 시설관리가 더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빠르게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고, 중소 규모의 미술관이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른 미술관들도 많은 부분에서 지속가능한 미술관을 위한 실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제 다음 단계를 위해 중간 점검과 리뷰를 통해서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지금도 탄소중립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앞으로 목표나 방향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탄소중립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2월에 LA에서 열릴 CIMAM 컨퍼런스의 주제가 미술관의 지속가능한 운영입니다. 팬데믹을 벗어난 지금도 탄소배출 저감이 영원하고 지속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금 환경에 이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미술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 환경’에 이어 접근성과 평등에 대한 매뉴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원기관으로써 50년 간 쌓아온 미술관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작가들의 세대교체와 새로운 가치관들의 도래에 맞춰 이 생태계의 어머니 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가치관을 확장하는 데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

(출처: CIMAM, Tours and Activities for CIMAM 2024 Annual Conference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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